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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가 우리 사이에서 잠든 밤,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습니다

 

추석 밤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에서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잠든 손녀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에서 옛날이야기를 듣다 잠든 손녀, 오래 기억하고 싶은 이번 추석의 한 장면입니다.

이번 추석에는 딸네 식구들이 우리 집에 다녀갔습니다.

아들네는 지난주 병원 진찰 일정 때문에 조금 일찍 다녀갔고, 추석에는 딸과 사위, 손녀가 와서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식들이 모두 결혼하고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나니 명절 풍경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꼭 한자리에 모이지 못하더라도 서로 전화로 안부를 묻고 명절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딸의 시댁도 창원이고 아들도 창원에 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서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딸과 아들은 전화로 추석 인사를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명절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자식들이 참 많이 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에서 잘래

이번 추석에 제게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잠잘 시간이 되자 손녀가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에서 자겠다고 했습니다.

셋이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웠습니다.

손녀가 옛날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직접 이야기를 시작하기보다는 유튜브에서 옛날이야기를 찾아 틀어주었습니다.

손녀는 가만히 누워 이야기를 듣더니 어느 순간 잠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이불을 덮어주면 발로 차버립니다. 혹시 추울까 싶어 다시 덮어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걷어찹니다.

저는 자다가 몇 번이나 깨서 이불을 다시 덮어주었습니다.

정작 손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잘 자는데 할아버지만 잠을 설친 셈입니다.

그래도 아침이 되어 생각해보니 싫지 않았습니다.

손녀가 언제까지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에서 자겠다고 할까요.

지금 아니면 갖기 어려운 시간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위를 보며 문득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이번에 딸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위 부모님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두 분 사이에 조금 의견이 맞지 않는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모습을 보는 사위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제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부모님이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열 살 전후였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조금 더 들었다면 말려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는 입을 떼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열 살 아이는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어렸던 시절은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폭력을 쓰는 일도 있었고,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어린 자식이 나서서 무슨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까지 폭력을 쓰는 모습을 볼 때면 어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무섭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월이 아주 많이 흘렀는데도 당시의 구체적인 일보다 그때 느꼈던 불안한 마음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부모 사이가 좋지 않은 모습을 자식이 보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저는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을 바라보면서 왜 저럴까 하는 생각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이제는 손녀까지 둔 할아버지가 되고 보니 또 다른 것이 보입니다.

부부가 평생을 함께 살면서 어떻게 항상 생각이 같을 수 있겠습니까.

저와 아내도 의견이 맞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서로 서운할 때도 있고 생각이 달라 부딪힐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는 우리 둘 사이에 의견이 맞지 않는 일이 있어도 좀처럼 티를 내지 않습니다.

특히 자식들 앞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우리가 늘 잘 지내는 줄 압니다.

예전에는 그것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어보니 그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녀에게 보여주는 모습도 부모의 몫이었습니다

부모라고 해서 항상 사이좋게 지낼 수는 없습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수십 년을 함께 살아가는데 어떻게 의견 차이가 없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의견이 다르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것을 어떻게 풀어가느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자녀들 앞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느꼈던 불안함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부모가 자식 앞에서 항상 행복한 척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부부 사이의 갈등을 자녀가 고스란히 짊어지게 하지 않는 것도 부모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아닐까,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날 밤 손녀는 우리 사이에서 편하게 잠들었습니다

이번 추석 밤을 다시 생각합니다.

손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에 누워 옛날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아무 걱정도 없는 얼굴로 편안하게 자고 있었습니다.

저는 손녀가 걷어찬 이불을 몇 번이나 다시 덮어주느라 잠을 설쳤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린 시절의 제가 생각납니다.

열 살 무렵의 저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불안해하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제 손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가 가장 편한 자리인 것처럼 그곳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손녀는 아마 그날 밤을 오래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옛날이야기를 듣다가 언제 잠들었는지도, 할아버지가 밤새 몇 번이나 이불을 덮어주었는지도 모를 겁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언젠가 손녀가 커서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 때 정확한 장면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할아버지와 할머니 곁에 있으면 편안했다.”

그런 느낌 하나쯤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으면 좋겠습니다.

잠은 조금 설쳤지만 오래 기억하고 싶은 추석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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