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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기다려 십 분 만에 먹은 칼국수|아내와 함께한 가을 토요일

 

성남 모란5일장의 가을 풍경 속에서 중년 부부가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 한 시간 기다려 먹은 영진네 칼국수와 아내와 함께한 토요일 나들이를 표현한 AI 이미지
아내와 함께 걸었던 가을 토요일의 모란5일장. 한 시간 기다려 십 분 만에 먹은 칼국수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는 것은 함께한 시간이었다. (AI 생성 이미지)

토요일이면 아내와 어디든 한번 나가보려고 한다.

거창한 여행이 아니어도 좋다. 가까운 공원을 걷거나 시장을 구경하는 것도 좋다. 일주일 동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아내에게 바깥바람을 쐬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오늘은 아내와 성남 모란5일장에 다녀왔다.

김포에 살 때 알게 된 칼국수집이 모란장에도 나온다고 해서 찾아간 길이었다. 칼국수 한 그릇 먹으러 갔다가 엄청난 인파에 놀라고, 한 시간 넘게 줄을 서고, 이것저것 장을 봐서 돌아왔다.

돌아와 생각하니 오늘도 참 괜찮은 하루였다.

토요일, 아내와 어디로 가볼까

은퇴하고 나니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해졌다.

평일에는 나름대로 할 일이 있지만, 토요일이면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아내는 일주일 동안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주말에는 집을 벗어나 사람 구경도 하고 바깥바람도 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성남 모란5일장이었다.

예전에 김포에서 알게 된 영진네 칼국수가 모란장에도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언제 한번 가보자고 생각했는데 오늘이 그날이 되었다.

지하철역에서부터 놀라기 시작한 아내

성남 모란역 5번 출구 주변, 모란5일장으로 향하는 많은 방문객과 가을 거리 풍경
모란역을 나오자마자 마주한 수많은 사람들. 아내와 함께한 토요일 나들이는 놀라움으로 시작됐다.

모란역에 도착하자 예상하지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내 눈에는 50m도 넘어 보였다.

역 밖으로 나와도 마찬가지였다.

시장을 향해 건너는 횡단보도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교통안내 요원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성남 모란5일장 입구로 향하는 횡단보도를 가득 메운 방문객들과 교통안내가 이루어지는 거리 풍경
횡단보도를 가득 메운 사람들. "와, 사람들이 정말 많네!" 아내의 감탄이 몇 번이나 이어졌다.

아내는 연신 놀라워했다.

"와, 사람들이 정말 많네!"

김포에서 살 때도 전통시장을 자주 다녔지만 이렇게 큰 시장과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나 역시 놀랐다.

사람이 많아 걷기는 조금 불편했지만, 오랜만에 활기가 넘치는 곳에 온 것 같아 기분은 좋았다.

시장 구경은 역시 사람 구경이다

성남 모란5일장 내부에 줄지어 늘어선 천막 상점과 생활용품, 다양한 물건을 구경하는 방문객들
끝없이 이어지는 상점과 북적이는 사람들. 아내와 함께 천천히 둘러보는 시장 구경도 즐거운 여행이었다.

모란장에 들어서니 상점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옷이며 생활용품, 농산물, 각종 먹거리까지 없는 것이 없어 보였다.

즉석에서 떡을 만드는 곳도 있었고, 호떡과 도넛을 파는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아내는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연신 감탄했다.

나는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며 함께 나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 구경은 꼭 무언가를 사야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물건을 고르는 모습, 장사하는 사람들의 바쁜 손길, 음식이 만들어지는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그렇게 시장을 반 바퀴쯤 돌았다.

김포에서 시작된 칼국수집과의 인연

오늘 우리가 모란장에 온 데는 작은 인연이 있었다.

김포에 살 때 전통시장에서 영진네 칼국수를 알게 됐다.

성남 모란5일장 영진네 칼국수 가게에 걸린 3대를 이어 지켜가는 어머니의 손맛 안내 현수막과 식사하는 손님들
김포에서 처음 알게 된 영진네 칼국수. 몇 달이 지나 성남 모란장에서 다시 만나니 왠지 반가웠다.

그때도 칼국수를 먹으려고 줄을 서 있었는데, 사람들이 한 남성을 알아보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궁금해서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분이 직접 말했다.

"육중완입니다."

가수 육중완 씨였다.

그렇게 우연히 유명인을 만났던 기억까지 남아 있는 칼국수집이다.

그 집이 모란장에도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다.

음식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하니 유난히 긴 줄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역시 영진네 칼국수였다.

반가운 마음은 들었지만 주인장이 나를 알아보지는 못할 것 같아 따로 인사를 나누지는 않았다.

우리는 조용히 줄 끝에 섰다.

한 시간 기다려 십 분 만에 먹은 칼국수

성남 모란5일장 영진네 칼국수 앞에서 식사를 기다리며 여러 줄로 길게 서 있는 방문객들
한 시간 넘게 기다려 십여 분 만에 먹은 칼국수. 아내와 함께였기에 기다림도 하루의 추억이 되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12시 30분이었다.

앞에는 서른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열 명씩 세 줄이 넘게 서 있었으니 금방 먹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한참 뒤에야 자리가 났다. 오후 1시 30분이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한 시간 넘게 기다린 것이다.

그런데 막상 칼국수를 먹는 데는 십여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려 십 분 만에 식사를 끝낸 셈이다.

오랫동안 기다려서인지 칼국수가 맛있었다.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오래 기다려서 배가 고프니까 맛있는 거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김포에서 알게 된 칼국수를 성남에서 다시 먹는다는 즐거움도 있었다.

무엇보다 아내와 함께 먹는 점심이었다.

아내의 눈썰미, 대파가 먼저 팔렸다

칼국수를 기다리는 동안 아내는 가만히 서 있지 않았다.

주변 가게들을 살펴보다가 대파를 발견했다.

"저 대파 정말 좋네. 얼른 사 와. 금방 다 팔리겠어."

아내의 말에 대파를 사서 맡겨 두었다.

그리고 다시 줄을 서서 칼국수를 기다렸다.

식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는 아내의 말대로 대파가 모두 팔리고 없었다.

미리 사서 맡겨 두지 않았다면 빈손으로 돌아올 뻔했다.

이럴 때 보면 아내는 역시 살림하는 사람답다.

나는 칼국수 먹을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아내는 좋은 대파부터 눈에 들어왔던 모양이다.

그렇게 맡겨 놓은 대파를 찾아 들었다.

참기름 한 병과 계획에 없던 장보기

오늘 모란장에 온 목적은 칼국수를 먹는 것과 참기름을 사는 것이었다.

칼국수를 먹었으니 이제 참기름을 살 차례였다.

가는 길에 인절미도 사고 옥수수 뻥튀기도 샀다.

시장에 오면 늘 그렇다.

꼭 필요한 물건만 사려고 해도 돌아갈 때는 생각하지 않았던 물건들이 하나둘 늘어난다.

참기름은 국산을 찾지 못해 중국산으로 샀다.

나도 국산 참기름을 제대로 골라줄 자신이 없으니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아내가 고르는 대로 맡겼다.

그렇게 참기름과 대파, 인절미와 옥수수 뻥튀기를 챙겨 시장을 나섰다.

칼국수 한 그릇 먹으러 왔다가 장까지 보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함께 걸을 사람이 있다는 것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모란역에서부터 사람들에 놀랐고, 시장의 규모에 감탄했고, 한 시간 넘게 칼국수를 기다렸다.

대파도 사고 참기름도 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물건이나 음식이 아니다.

사람이 너무 많다며 놀라던 아내의 모습이다.

대파가 좋으니 얼른 사 오라고 하던 말도 생각난다.

칼국수를 맛있게 먹고 나니 배가 고파서 그렇다고 하던 말도 떠오른다.

젊었을 때는 주말이면 특별한 곳에 가야 즐거운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달라진다.

멀리 가지 않아도 좋다. 비싼 음식을 먹지 않아도 좋다.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풍경을 보며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늘도 기분 좋은 외출이었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려 십여 분 만에 먹은 칼국수.

생각할수록 조금 우습다.

그렇게 오래 기다릴 만큼 특별한 음식이었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하지만 오늘 모란장에 다녀온 것이 좋았느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서고, 북적이는 시장을 구경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보냈기 때문이다.

은퇴 후의 삶이란 어쩌면 이런 날들이 하나둘 쌓여가는 시간이 아닐까.

어디를 다녀왔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다녀왔느냐가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오늘도 아내와 함께한 기분 좋은 토요일이었다.

다음 토요일에는 또 어디로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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